이번글에서는 철학상 문제의 특징과 소크라테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철학 문제의 특징
- 철학과 다른 학문을 구분하는 방법은 철학이 제기하는 문제가 다른 학문의 문제와 구분되는 점을 찾는 것이다. 18세기까지는 수학과 물리학은 철학과 독립된 학문이 아니라 하나의 자연철학으로 인식되었다. 물론 당시에 통용된 물리학은 오늘날 자연과학에서 다루는 물리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철학의 고유한 문제들은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4가지 물음으로 요약된다.
- 나는 무엇을 아는가?: 인식론의 주요 문제이다. 외부 사물은 실재하는가? 외부의 사물은 어떻게 인식되는가? 인간의 지각 능력에 독립해서 존재하는 실재란 과연 있는가? 있다면 인간의 인식은 어떻게 밖에 있는 실재에 대응할 수 있는가? 하나의 인식이 참이 될 수 있는 기준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인식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그리고 참인 인식에서 어떻게 지식을 획득할 수 있는가? 한편 형이상학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인간 대부분의 인식 방법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것이다. 시간과 공간은 연속하는가? 우주의 시작과 끝은 존재하는가? 신은 존재하는가?
-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실제 상황에서 우리는 옳고 그름에 향한 이론상 관념을 어떻게 적용하는가? 윤리학 주요 문제. 옳고 그른 것들 사이 차이가 있는가?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찌 증명할 수 있는가?
- 나는 무엇을 바라는가?: 예술작품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예술철학의 주요 문제. 예술은 인간에게 어떤 쾌락을 주는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 인간이란 무엇인가?: 국가는 어떻게 성립되고 또 어떻게 운영되는가? 사회철학의 주요 문제. 인간은 어떻게 해서 사회를 이루는가?
2. 소크라테스
- 플라톤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산파였던 파이나 레테를 어머니로, 석공소를 운영한 석공이자 조각가였던 소 프로니 코스를 아버지로 하는 아테네의 서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성장 초년에는 직업을 세습하던 당시 문화에 따라 아버지 밑에서 석공 기술을 배우며 철학, 기하학, 천문학 등을 공부했고, 청년에서 40세까지 세 번에 걸친 전쟁에 중장보병으로 전투에 직접 참여하였다. 40세 이후에는 교육자로 청년들의 교화에 힘썼다. 기원전 406년, 500명 공회의 원로 일원이 되어 1년간 정치에 참여하기도 했다.
- 소크라테스(기원전 470년 – 기원전 399년)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이다. 기원전 469년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나 일생을 철학의 문제에 관한 토론으로 일관한 서양 철학에서 첫 번째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죽음은 리콘, 아니토스, 멜 레 토스등에 의해 '젊은 세대들을 타락시킨 죄', '신성 모독죄 '로 기소당하고 기원전 399년에 71세의 나이로 사약형으로 사형을 당했다. 실존철학의 거장인 카를 야스퍼스의 저서 위대한 사상가들에게서도 그렇게 보고 있다.
영국의 철학자인 화이트헤드는 "서양의 2000년 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 말했으며, 시인 에머슨은 "철학은 플라톤이고, 플라톤은 철학" 이라 평하였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수제자이다. 플라톤이 20대인 시절, 스승 소크라테스가 민주주의에 의해 끝내 사형당하는 것을 보고 크게 분개했으며, 이는 그의 귀족주의 지지의 큰 계기가 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소크라테스의 증손 제자로,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 플라톤과 달리 민주주의를 지지했다.
- 소크라테스의 죽음, 자크루이 다비드, 1787년
그는 자연 철학을 배웠으나, 그 기계론적 세계관에 불만을 품었다. 그때는 아테네의 몰락기였으므로 보수적이고 귀족적인 정신과 진보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비판적 정신이 소용돌이치는 시대였다. 그도 이러한 경향을 지니게 되었으나 당시의 소피스트들처럼 궤변으로 진리를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태도를 배격하고,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진리를 찾아서 이상주의적, 목적론적인 철학을 수립하려고 하였다.
그는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의·절제·용기·경건 등을 가르쳐 많은 청년에게 큰 감화를 끼쳤으나, 공포정치 시대의 참주였던 크리티아스 등의 출현이 그의 영향 때문이라는 오해받게 되어 '청년을 부패시키고 국가의 여러 신을 믿지 않는 자'라는 죄명으로 고소되고, 배심원들의 투표 결과 40표로 사형이 언도되었다. 그는 도주할 수도 있었으나 태연히 독배를 들어 마시면서 자신이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을 빚졌다며 자신 대신 갚아 달라고 친구에게 당부하였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의학의 신으로 그의 신전에서 치료받은 사람은 닭을 대가로 바쳐야 했다고 한다.)
참고로, 흔히 소크라테스라 하면 악법도 법이다 라며 담담히 사약을 받아들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야기가 후에 변질된 것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중 하나인, 에우렐이 말년에 작성한 파타모닐리아에 묘사한 내용을 보면,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내려진 사약을 몇 번이고 뒤엎어서 결국 마지막에 간수장이 간수들을 시켜 억지로 사약을 먹여 최후를 맞이했다고 한다.
다음글에서는 고대 중국철학자인 공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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